심야교습 단속 비웃듯…신학기 대치동 학원가는 `불야성`
심야교습 단속 비웃듯…신학기 대치동 학원가는 `불야성`
지난 2일 밤 10시 10분 `대한민국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구 대치동.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대입용 영어와 서울대 공인영어시험 텝스(TEPS)를
준비시키는 영어학원에 다가가자
창문 너머로 강사의 강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모든 유리창을 시트지로 가려 놓아
밖에서 안을 보기 어려웠지만,
환풍구를 통해 환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환풍구로 본 교실에서는
학생 15명이 열심히 수업 내용을 받아 적고 있었다.
밤 11시가 돼서야 학생들이 쏟아져 나온
한 수학학원에 들어가 원장에게
"왜 학생들이 이제야 귀가하느냐"고
기자가 묻자 "우리 학원 학생들이 아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장은 "수업은 10시에 끝냈고
내일 있을 강의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학원들의 심야 불법교습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학원들의 심야수업 강행은 날로 대담해지는 반면,
단속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관련 규정이 유명무실해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교육 팽창을 막기 위해 2008년 제정한
`서울시 심야교습 금지 조례`에 따라
서울지역 학원은 밤 10시가 되면
모두 수업을 종료해야 한다.
하지만 학원 내부를 가려 놓고
`배짱 교습`을 계속하는 사례는
대치동 일부 골목에서만
수학, 영어, 통합과학, 입시컨설팅 학원 등
5곳이나 확인할 수 있었다.
학원 문을 닫고 다른 장소로 이동해
교습을 이어가는 학원부터
환하게 불을 켠 채 보란 듯이
수업을 계속하는 학원까지 불법교습 유형은 다양했다.
2014년을 전후해 대치동 학원가 주변 빌라 등
가정집을 개조해 심야교습을 하는 곳도
우후죽순 생겨났다.
밤 10시까지는 기존 학원 건물에서 수업을 하되
10시 이후에는 장소를 옮겨 `비밀교습`을 계속하는 방식이다.
대치동 K부동산 관계자는 "요즘 임차료 등
유지비용이 높아지면서
가정집을 찾는 학원이 과거보다 줄어들긴 했다"면서도
"이 동네에 가정집을 교실처럼
쓰는 학원이 많은 것은 사실"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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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은 비밀 교습소인 가정집을
`학원 자습실`이라고 불렀다.
자율학습을 위해 대치동 학원가
부근 대표적인 주택가인
도곡초 인근 빌라로 향하던
정 모군(17)은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궁금한 것을
질문할 선생님이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해
학원 자습실(빌라)을 이용한다"며
"어떤 학원강사는 아파트에
24시간 자습실을 운영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교육당국의 단속을 피하는 방법이
더욱 교묘해진 것이다.
서울시교육청은 이 같은 심야교습 실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지난해 단속 기준을 한층 강화했다.
밤 10시 이후 1시간 이내 초과 교습을 했을 때
벌점 20점, 1~2시간 이내에는 벌점 35점,
2시간을 초과하면 벌점 40점을 받으며
누적 벌점이 31점 이상이면
해당 학원은 영업정지 처분을 받게 된다.
사실상 두 번 적발되면 영업이 정지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현행 불법 심야교습
단속 체제가 유명무실한 수준이라고 지적한다.
서울 서초동에서 영어강사로 일하는 김 모씨는
"사교육으로 유명한 강남·서초 지역은
단속 대상 학원이 수천 개에 달한다"며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그만한 인력이 있을지 의문"
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현재 강남서초교육지원청에
심야교습을 단속하는 인력은 5명에 불과하다.
또 김씨는 "밤 10시 이후
학원 통학용 버스에서
쪽지시험을 보는 곳이 있는가 하면
앱을 통해 24시간 문제풀이 지도를 해주는 곳도 많다"며
"심야교습 단속의 실효성은 대단히 낮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심야교습으로 적발된 학원은
2015년 213곳, 2016년 234곳,
지난해 162곳으로 매년 200곳 안팎 수준이다.
하지만 불법 심야교습 학원 규모는
매년 실제 적발 건수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학원가는 보고 있다.
안상진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정책대안연구소장은
"강남권 학원가의 심야교습은
학원 간 경쟁에 의해서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측면이 있다"며
"지자체별 조례에 따른 자체 규제에
맡겨놓을 것이 아니라 심야교습 금지를
법제화함으로써 교습시간
위반을 더 강력하게 제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